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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시 분류/추억.친구91

가을밤 가을밤 마루 박재성 귀뚤귀뚤귀뚜루 여름을 밀어내는 낯선 울음소리가 들린다 석이와 순이가 평상에 누워 밤하늘 별을 헤아리며 듣던 그 울음소리 가슴 콩닥거리는 소리보다 컸다가 작았다가 얼굴 붉히며 속삭이는 소리보다 빨랐다가 느렸다가 입술이라도 마주치면 눈 감은 도둑고양이 마냥 조용히 그렇게 가을이 찾아왔고 찾아온 가을은 순이를 밀어내고 석이만 홀로 남아 가을을 탄다 가을밤 긴 한숨 소리는 순이를 부르는 소리 별 헤아리는 소리는 순이를 만나는 소리 귀뚜리 울음소리는 순이의 속삭임이 되어 긴 밤 별을 달달 볶아 잠 못 들게 한다 2022. 8. 20.
친구야 친구야 마루 박재성 눈 오는 첩첩산중에 집이 몇이나 되었다고 나 눈썰매 탈 때 너 밥 먹었더냐 그 밥숟가락에 네 이름 내 이름 써 놓았더냐 그 첩첩산중에 오늘도 눈이 내린다 소담스러운 흰 눈송이마다 네가 앉아서 깔깔 웃는다 미이친놈 어서 이리 내려와 "Open Doors - Secret Garden" 2022. 3. 18.
순이 순이 / 마루 박재성 어른의 키보다 훨씬 큰 평상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빛 아래 나란히 앉은 말 없는 그림자 순이 너의 단발머리 앞으로 하얀 입김이 피어오를 때 너는 떨리는 어금니를 앙다물고 있었고 나는 발가락이 어는 것을 참았지 그냥 밤늦도록 아침에 새로 생긴 두꺼운 양말을 신을 때 옆집 아주머니가 하얀 봉투를 건네주셨지 너의 결석계를 전해주라시며 학교로 향하는 내 발가락은 따뜻했지만 네 방문 앞에 남아 있는 내 마음은 오들오들 떨었지 2021. 12. 25.
추억의 길 추억의 길 / 마루 박재성 가위바위보로 보이는 길 그 끝까지 먼저 가면 특권을 주던 시절 가위와 보의 차이만큼 한 걸음씩 멀어지는 친구들을 보며 길의 끝이 더 멀기를 바라던 시절 아이스케키는 왜 그리 맛있어 보이던지 한 입만 베어 먹으라 할 양이면 악마 같던 친구가 천사가 되었고 내 한입 크기에 놀라 다시 악마가 된 친구는 내 이마를 때리고는 했었지 이 길 위에서 친구들이 보고픈 것은 오늘만은 가위바위보에서 내가 이길 것 같기 때문이다 2021. 7. 13.
해운대의 밤 해운대의 밤 마루 박재성 바닷가 모래밭 우리들의 이름을 새기고 까르르 웃음 속에 감추어둔 그날의 추억 그 밤에 아쉬운 눈빛으로 별빛 바라보며 손 마주 잡고 했던 먼 훗날의 약속 오늘이 그날 추억 한소끔 모래 위에 뿌리면 바닷물 철썩 그날을 불러오고 쏴르르 모래 부딪는 소리 그날의 웃음소리 이 밤에 손 마주 잡고 다시 만드는 먼 훗날의 약속 2021. 5. 13.
5월의 향기 5월의 향기 마루 박재성 멀리 산중에 하얀 섬 아카시아꽃이 보이면 차창을 내린다 그리운 무언가가 있다 어두운 터널로 들어가며 차창을 올린다 코끝에 다가왔다 사라진 그 향기처럼 채 꺼내기도 전에 추억은 차단된다 밝은 빛이 눈을 밝히면 나의 아카시아는 터널 안에 갇히고 만다 2021. 5.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