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겐 총을 들 힘이 있었다
마루 박재성
탱크의 포성과 따발총 소리가
지나간 곳에서는
공기 중에
피의 내음이 날아다녔고
그들의 붉은 깃발 아래서는
사상의 색깔이 다르다는 이유로
많은 주검이
흐르지 않는 피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그들은 조선반도의 한 형제들이었건만
형도 아우도 없는 사상의 전쟁이
나와 가족 이웃과 조국의
자유와 어우러진 삶의
마지막 숨통을 끊으려 하기에
비통한 가슴에서 나오는 충정이
책과 연필을 잡던 손에
녹슨 총을 잡게 했다
그 총 한 자루가
그들의 총알들이 지나갈 가슴이 되어
그들의 걸음을 더디게 할 수 있다기에
내 가슴을 총알 앞에 벌리는 것에 대한
조국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염치였건만
어린 마음은 마다치 않고
태풍을 막아서는
꽃잎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