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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좋은 시 모음

[스크랩] 달섬문학 11집 원고

by 마루 박재성 2016. 6. 29.



달섬문학 11집 원고/김문억


*헤디즘Headism의 고독


상설 전시장 민머리 속으로
문 열고 들어와 봐요
내 안에서 나를 보세요
 
세발달린 나무의자
구멍 없는 대바늘
시멘트로 때운 눈
혀를 꼭 깨물고 울음 참는 그믐달과
마침내 시동이 걸린 월정 역 기관차와
차표를 판매하는 인공지능 로봇까지 
  다음에는 의정부 쪽 뒤통수로 돌아와 봐요
단내 나는 고무신짝
뚜껑 없는 사이다병
눈 못된 진눈개비와
찌그러진 술 주전자까지
고전과 현재 미래가 한방에서 비좁지만 


포근한 봉분에 숨어
전시품을 또 만든다
2015. 7. 6


*헤디즘
영국 아티스트 필립 르빈(Phillip Levine)이 자신의 머리를 캔버스 삼아 작업한 민머리 아트




물 먹는 달/김문억



아침 일찍 끌고 나간 해를 멀리 놓치고
막차로 막幕 내렸지만 내 집은 아직 멀다


팔다리가 접히면서 수분이 떨어진 입이 마른다
포장마차에 들어 암 덩어리 같은 닭똥집을 뒤집으며
가슴에 묻어두었던 왕소금을 뿌린다
이빨 빠진 청춘가 한 소절을 부르지만
끊어지고 건너뛰는 유행가 사이사이 
연소되지 않는 매캐한 연기 사이
세월을 줄줄이 엮은 열차가 지나가고
으슬으슬 오늘 밤 춥다
칙칙 소리를 내며 더운 김을 뿜으며
술잔 비스듬히 빠져드는 달빛
누가 던져줄까 구명조끼 기다리며
가파르게 기울고 있는 하현달이 위태하다


중랑천 폐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달
2015.7.29.19.30





펌프 물/김문억


1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샘을 메우고 펌프를 설치했다


바가지를 들고 서서 우두커니 샘물을 들여다보던 어머니는
샘물 속에 떠오르는 얼굴을 퍼 담기가 무거웠다
펌프질을 하던 처음 얼마 동안은
괴로운 소리를 내며 흙탕물이 쏟아지고
혀끝에 깔깔한 모래알이 섞여 나왔다
흐리멍덩한 詩 를 독려하면서
졸음을 쫓기 위해 등목을 하는 날도
설익은 시 만큼이나 거친 뻘건 물이 나왔다
목 타는 가뭄으로 중복을 지나던 여름
펌프도 목이 말라 물이 나오지 않을 때
어머니의 마중물 한 바가지로
맑은 물이 펑펑 쏟아져 나왔다.


매미의 긴 가락이 시조창을 하는 날
많은 식구들이 펌프 물을 먹었다.


2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펌프를 철거했다


밤이면 혼자 와서 물을 퍼 올리는 어머니의 수고가 안쓰러웠고
녹슬어가는 펌프가 보기 흉했다
샘물에 빠뜨리고 건져 올리지 못한 얼굴과
몇 소절의 추억을 안고 식구들은 각자 흩어져갔다.


수돗물 꼭지를 열고 닫는 동안
펌프질 소리가 섞여 나왔다




널 위해 죽어라고 내가 시를 쓰면

 

자꾸 나오라고 하네

턱 밑까지 다가와서 문자 보내는 단골 독자


그나마 흉작으로 잡초더미 글밭인데 낱낱이 콩밭 되면 잘난 얼굴 곰보 될라
지금은 홀로 쓸쓸한 말라깽이 몸뚱이 뿐이어서 땡볕에 내놓으면 휘발성 외로움에 위험천만 훅! 폭약 같은 성냥 알갱이 몰라몰라 나도 몰라 자나 깨나 불조심 꺼진 불도 다시 보자.
사정없이 여자를 좋아하는 내가 헐! 접선하기 까지는 갓 쓰고 만들어 세운 소슬 대문 너무 높아 나갈 수가 없고
  그러지 말고 여보시오!
그리움은 금 같은 것, 함부로 밖으로 내두르면 돌 되나니
너와 내가 해 기울면 칠흑같이 깊은 밤에 먹물 한 번 훅 뿌리고
비 오는 달밤에도 베 짜고 현을 켜는 풀벌레나 되어
깊고 깊은 인터넷 방 이 방 저 방 쪽방까지 詩나 듬뿍 묻히면서 둥가둥가 내 사랑아 업고 뛰고 어울린들 누가 보고 누가 알랴.

널 위해 죽어라고 내가 시를 쓰면
날 위해 죽어라고  읽어만다오

  








팽이/김문억


1
차렷!
똑바로 서
왜 자꾸 말 안 들어
어리고 힘없는 것
옷을 홀랑 벗겨놓고
아무런 잘못도 없이
온몸을 마구 때린다

왜 자꾸 나만 때려
노예 다루듯 해
잠도 못 자게하고
쉴 틈을 주지 않는다
견디고 견디다 못해
쓰러져서 죽는다


2
너 지금 어디 있니
왜 빨리 집에 안 와
밥 먹고 학원가고
피아노 배워야지


엄마가 그린 무지개
뺑뺑이로 돌린다

  -2016년 달섬문학 발표작



출처 : 풍경이 있는 시
글쓴이 : 고쿠락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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